월간 의성산장 2024년 1월호

노아란



Intro. 

Winter is coming 


겨울은 향으로 온다. 바람이 면에서 선으로 불기 시작할 때 겨울은 감지된다. 

길고, 얇고, 뾰족해 콧속에서 와르르 산산조각이 나는 겨울 바람에는 차가운 결말과 냉랭한 시작의 냄새가 난다. *

*김울, 겨울의 언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뜨거웠던 의성의 여름이 지나고 윤슬처럼 빛나던 황금들녘이 떠나고 겨울의 향이 스며들었다. 다른 도시들처럼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의성의 탁 트인 하늘은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지 않는 것처럼 칼바람 또한 피할 길이 없다. 그리 춥지 않은데 하고 방심하다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를 만큼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맞고 있다 보면 이 추운 날 의성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곳에 겨울이 오면 일전에 가봤던 청송 주왕산 빙벽이 생각난다. 굽이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멀리서부터 하얗게 얼어붙은 인공폭포가 절로 감탄을 불러온다. 켜켜이 담긴 시간을 담은 거대한 빙벽 앞에서 인생 사진을 찍겠다고 삼삼오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거대한 빙벽이 주는 압도되는 감각은 겨울의 쨍한 공기와 더불어 오래도록 내 기억에 자리했었다. 의성의 겨울은 농한기로 평온하고 조용한듯했지만 의성의 겨울을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열정이 숨 쉬는 겨울 아웃도어 활동의 명소였다. 


Chapter. 1 의성군 단촌면 “빙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겨울이 되면 한적했던 단촌면 보건소 앞 주차장은 방문객빙들의 차로 채워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조용한 단촌면에 수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걸까? 의성과 안동에서 고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암벽이 하나 있다. 흑운모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암벽은 인공폭포로 사용되었다가 겨울이 오면 물과 차가운 공기가 만나 빙벽으로 탈바뀜 한다. 꽁꽁 얼어붙은 빙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삼오오 그곳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동클리이밍짐”의 배원대 센터장이 빙벽 등반을 위해 단촌면에 암벽이 있는 산 전체를 매입하였으며, 직접 물을 끌어올려 겨울철 빙벽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개인 사유지인 만큼 빙벽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도 직접 내고있다. 이에 빙벽을 찾는 전국의 빙벽 등반가들은 고마움에 본인들이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지원하며 매년 단촌면 빙벽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단촌면 빙벽은 되도록 하루 5팀(2인 1조) 정도만 받는 다고 한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만큼 복잡함을 줄이고 안전을 위해 미리 예약을 하고 이용 요금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입소문과 동호회 등으로 알려져 매년 겨울이 되면 빙벽을 오르려 많은 등반가들이 찾아온다. 

빙벽 등반을 할 때에는 2명이 한조로 함께 움직인다. 등반자와 확보자가 빙벽을 오르면서 스크루를 박아 줄을 이어 등반하는 “리딩” 과 위에 올라가서 줄을 거는 “탑로핑”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빙벽에 오른다. 다양한 장비들이 필요 하지만 빙벽을 오를 때 가장 중요한 장비들 중에는 신발인 클램프, 빙벽화, 찍어 올라가는 걸 도와주는 아이스 바일 등이 있다고 한다.




 “원래 한 10년 전에 집 근처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가 4년 전부터 빙벽 등반까지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춥고 이걸 왜 하지? 했는데 어쩔 때는 영하 거의 15° ~ 20° 이런 데서도 아침에 하고 그러면서 손발이 꽁꽁 얼기도 했어요. 매력이라고 하면 힘이 떨어지고 지칠 때쯤 얼음을 찍으면서 미운 사람들 생각하니 스트레스도 풀리고(웃음),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면서 집중을 하다 보면 오롯이 저만의 시간이라 기분이 좋아져요.” _한수연(포항시) 


그렇게 열정과 패기, 도전과 용기로 단촌면은 겨울마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Chapter 2. 빙어 낚시 맛집은 여기! 의성군 금봉저수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에 후끈함이 느껴지는 빙어 스폿 


지역마다 겨울이면 빙어 축제를 유치할 정도로 겨울철 가족단위 방문이 많은 낚시꾼들에게 인기 만점인 빙어 낚시. 의성군에도 저수지가 많아 빙어를 잡을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장소로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에 위치하고 있는 금봉저수지를 소개한다. 

겨울철 빙어가 잡히는 금봉저수지에는 빙어를 낚기 위해 지역민들과 타 지역 방문객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 빙어 잡기가 한창이다. 


“빙어는 순수한 민물에 사는 종류, 염분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 곳에서 사는 종류, 강과 바다를 회유하는 종류 총 세 가지로 나뉜다. 오이 맛이 난다고 오이 과(瓜) 자를 써서 과어(瓜漁) 또는 오이물고기라고도 했다. 빙어는 얼음에 구멍을 내어 잡는다고 얼음 빙(氷) 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작고 날렵한 생김새와 깨끗한 얼음물 속에서 산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호수의 요정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나무위키]




빙어를 잡기 위해선 아이스오거나 끌(얼음을 뚫는 장비), 낚싯대(릴낚시, 견지대), 채비, 굼벵이, 살림통 등이 필요하다. 빙어낚시의 필수조건은 두꺼운 얼음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돌이나 망치로 깰 계획이라면 오산이다. 20cm 이상 꽁꽁 언 얼음은 위에 설명한 장비가 아니고는 쉽게 뚫지 못한다. 따라서 장비를 구비하거나 장비가 부담스럽다면 옆에 장비를 가지신 분에게 부탁을 하거나 이미 뚫려있는 곳을 공략하여야 한다. 또한 초보자들은 막상 가보면 빙어 잡기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밑밥(미끼)을 뿌린 후 바닥부터 수심 전체를 탐색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낚싯대를 놓고 앉아있다 보면, 여기저기 “잡았다”라고 들려오는 소리에 빙어는 못 낚고 세월만 낚고 있던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이 반짝인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가 더 많이 빙어를 잡는지 숨 막히는 경쟁이 낚시꾼들 사이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빙어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얼어붙은 저수지에서 자리 잡고 앉아 나누는 담소, 빙어를 잡고 신나하는 모습, 겨울의 추위도 잊게 만드는 집중력과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 지었던 금봉저수지에서의 빙어 낚시였다. 


빙어회, 빙어튀김, 도리뱅뱅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빙어 맛집






Chapter 3. 가장 추울 때만 가능한 캠핑 ‘빙박’ 


해 질 녘 빙어 낚시가 마무리될 때쯤에도 금봉저수지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텐트 몇 동이 보였다. 동계 아웃도어 액티비티 중 하나인 빙박을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빙박은 20cm 이상 얼어있는 강이나 호수은 위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하루를 지내는 캠핑으로 겨울철 백패커들에게 인기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빙박을 즐기기 위한 캠퍼들은 안전을 고려하여 대부분 강원도 , 경북 지역의 호수나 강줄기가 얼어붙는 추운 날에 움직인다. 안동의 대사리의 경우 겨울에 텐트 100여 동 정도가 빙박을 위해 북적인다. 의성 금봉저수지는 빙어 낚시와 빙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사진 제공 https://blog.naver.com/eziiiill1


빙박을 즐기는 이들이 백패커들이 많은 이유는 얼음 위에 서는 최소한의 장비가 허용되기 때문인데, 오토캠핑 이나 노지캠핑을하는 캠퍼에게 한겨울에 난로나 전기가 없이 잠들기 어려운 이유도 한몫한다. 이들에 비해 난로 없이도 밤을 보내는 고스펙의 장비들을 보유한 백패커들에게 빙박은 겨울이 주는 특별한 이벤트인 셈이다.

 빙박을 하기 위해선 일반적인 텐트 팩보다 나사 형태의 팩을 사용하는 것이 꿀팁이다. 망치로 가격하는 못형태의 팩은 얼음을 깨트리고 박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동계용 침낭과 R-Value가 높은 에어매트를 사용해서 얼음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차단해야 빙박이 가능하다. 

빙박을 하다보면 기온이 더 떨어지는 새벽시간에 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간혹 들린다. 처음 이 소리를 들으면 얼음이 깨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로 밤을 지세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리는 새벽에 얼음이 더 단단하게 얼면서 발생하는 소리로 안심해도 된다. 겨울에만 가능한 이 캠핑은 얼음 위에 반사되는 랜턴 불빛, 많은 별과 자다가 들리는 얼음이 얼면서 꽝 하고 갈라지는 소리 등 수많은 감각들로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Chapter 4. 청정구역 보의 변신 : 모두의 썰매장 


자연이 주는 놀이터, 신수리 얼음썰매장의 첫 오픈 


의성군에는 겨울에 다양한 방법으로 얼음썰매장을 운영하는 마을들이 있다. 그중 안사면 신수리는 마을의 자랑인 청정구역 보를 썰매장으로 활용했는데, 주민들이 이 겨울을 위해 얼마나 뜨거운 여름을 보냈는지 기억이 생생하기에 다시 방문했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마을을 찾아줄 손님들을 위한 간식까지 손수 준비한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시골에 갔다가 꽁꽁 언 강가나 논에서 썰매 대신 할머니가 쓰다 망가진 고무 다라이(대야)를 타며 즐거웠던 추억들. 어느새 몸집이 커져버린 나는 썰매 타기가 2배는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동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추억 속의 나만큼 작은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아이들도 나중에 내 나이가 되면 다시 찾은 썰매장에서 오늘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얼음썰매장 옆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쉼터 천막 안에는 신수리 마을 주민들의 인심으로 후끈했다. 주민께서 꽈리 틀은 어묵과 직접 만드신 홍화 동동주를 내주셨다. 뜨끈한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며 썰매장 곳곳을 살펴보니 신수리 주민들의 배려가 동동주 위에 나풀거리는 홍화 꽃잎처럼 화사했다. 어느새 쉼터는 마을의 아지트가 되었고, 매주 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마을이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추운 겨울을 홍화꽃처럼 물들였다. 

1월의 신수리는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와 먹거리를 선물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어느 겨울날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라는 또 다른 선물도 함께 주고 있었다.



“의성에 그것도 신수리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나고 재미있게 놀면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큰 썰매장이 생겨서 좋아요! 썰매장 내려갈 때 미끄러워 발판이랑 썰매 타고 내릴 때 디딤판이 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고 화장실과 방한용품 대여·판매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이 준비를 하지 않아도 더 편하게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_김희경(안계면)



Outro 겨울, 단 하나의 문장 



국경을 지나니 눈의 고장이었다.  긴 터널을 나오니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첫 문장입니다. 책의 첫 문장은 근대문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1968년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이었습니다. 흔해빠진 유부남이 불륜에 빠진 이야기가 어떻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당시 <설국>은 서구식 소설이 아닌, 시처럼 분절된 여러 이어지는 수려한 문장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작가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12년이 넘는 순간 동안 11개의 단편들에서 수도 없이 고쳐서 <설국>의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겨울을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빙벽을 만들어 매일 오르고 도전하는 사람들. 우리 마을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시간 고민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주민들. 


그들 모두에게 언젠가 단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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